목사님칼럼 / 찬양

2012.08.04 21:40

그리움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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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떠났다. 큰 아이가 떠났다.

늘 내 곁에 있어 줄 것 같았던 내 마음 속의 아가...

난 그 녀석의 어릴 적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지금도 훌륭한 아들이지만 어릴 적 그 아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삶의 고단함에 고자누룩해진 아빠를 위해 연신 뽀뽀를 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아이 엄마와 말다툼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우리 둘 사이에 들어와 자는 척을 해 주던 아이...

그 모습이 너무 처연하고 서러워 그 상막한 상황을 잊게 해 주었던 아이...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에게 다녀오면 며칠 밤을 그리움에 울 줄 알던 아이.

아빠의 콘서트에서 동생들과 멋지게 skit을 준비해서 아빠를 놀라게 해 주었던 아이.

기도원에서 몇날 며칠 울고만 있을 때 아빠를 찾아와 예수님 십자가를 익살스럽게 셋으로 만들어 보여주던 아이.



서정주는 자기 인생의 팔 할은 바람이 키웠다고 했는데 나의 인생의 팔 할은 내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을 그리워하는 그 그리움이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힘들 때마다 그 힘든 아빠 곁에서 늘 명랑하게 잘 커준 아이들을 생각하여 이겨냈었다.



그 아이가 없다. 갑자기 없다. 머나먼 미국 땅에 아이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아비의 심정, 왜 이별의 순간에는 잘해준 것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못해준 것만 기억이 날까...



막내 아이의 생일이라고 이태원의 옷 가게에 들렀다. 둘이서...

형이 없는 아이도 힘이 없고, 울음 가득 머금은 아비의 눈도 큰 아이가 즐겨 먹던 햄버거 집에서 떠날 줄 모른다.

진리는 관계를 타고 넘는다고 했던가?

너무 쉽게 진리를 논하지 말자. 너무 쉽게 위로도 하지 말자. 그리고 너무 쉽게 위로 받지도 말자. 그냥 슬픈 것은 슬픔으로 그리운 것은 그리움으로 남겨두자. 그리고 슬퍼하자. 그리고 그리워하자. 어떤 철학자가 이야기한 몸각(覺)을 총 동원하여 그리워하자.

장이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에 흘러넘치던 고량주의 향기처럼 강하고 싸한 그 그리움을 놓지 말자.

천변만화의 무심이 있다면 이 공허가 메워질까? 아니 정말 이 그리움의 끝에는 내 아이가 있는 게 맞는 것일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다른 슬픔이 문을 여는,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몸을 기대 마음의 무덤에 벌초를 하러 간다. 진설할 음식도 없이 맨 술 옆에 차고 마음의 무덤으로 향한다. 만개한 꽃도 없고, 개망초의 시름만 있는 곳. 그게 지금의 내 마음이다.

진리가 가는 곳이 천국이라며?

그런데 ‘나’가 문제다. 천국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육의 나, 어서 어서 장사지내고 싶은데 이렇게 그 ‘나’가 집요하다.

아들을 보내며 또 다시 진리의 한 귀퉁이를 깨닫다.

제발 울어라 비루한 인생들이여... 너희의 처지가 어떠한 상태인지 제발 똑바로 보아라...

살려서 죽이고 죽여서 살리는 하늘의 오묘를 깨닫고 그 교만의 동산에서 이제 내려오라.

운다. 그리워한다. 아프다. 고단하다. 외롭다. 힘들다. 이게 왜 약한 것이며 왜 나쁜 것이겠는가? 

그 속에서 자유의 끈을 붙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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