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칼럼 /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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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먼 진리의 여정

 

 

지난 며칠간, 설교 준비라는 중압감에서 해방이 되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상고해 보는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삶의 길목마다에 세워져 있는 에벤에셀의 돌탑들이 
내겐 너무나 은혜로운 전환점들이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신앙생활은 열심 그 자체였다. 열심이 특심이라는 말은 꼭 내게 어울리는 그런 말이었다. 
난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줄 알았다.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종교 행위를 하다보면 하늘도 감동하여 천국에 보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 

신앙생활의 내용이겠거니 살았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한국 개혁주의 진영의 독보적 목사님들 몇 분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난 한국교회 전반에 퍼져있는 신비주의와 기복주의의 허상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신비적인 경험을 허다하게 해왔던 내게 그러한 신학의 스승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용한 목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개혁신학의 틀 위에서 나의 신학이 정립이 되어갈 즈음 난 미국으로 신학을 공부하러 떠나게 되었다. 
친정이 미국인 아내를 만나 그것도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난 그곳에서 침례교 신학과 감리교 신학과 장로교 신학을 
각 2년씩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스승들을 또 붙여 주셨다. 
난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스승들을 만나면 귀찮을 정도로 그들을 달달 볶아대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이고 낮이고 난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개의치 않는 거머리 같은 사람으로 살았다. 
처음에는 그러한 학문적 욕구 충족의 차원에서 선생들을 못살게 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난 기독교의 실체를 하나하나 정립해 나가고 있었다.

그 무렵 내 좌우명이 ‘스승을 만나면 반드시 그 스승을 뛰어 넘자’였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난 길게는 2-3년 짧게는 수개월 만에 그 스승들이 갖고 있는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었다. 
난 하루에 서너 시간 잠자는 시간 외엔 책상 앞에서 떠난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니 목회에도 신경을 쓸 수가 없었을 터.

난 목회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여 놓고 문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관리하는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솔직히 말해 ‘나의 구원’이었다. 이렇게 죽도록 공부를 해서 정립하고 가르치고 
믿었던 것이 ‘아니요’에 해당하는 것이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래서 정말 죽도록 공부를 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내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진짜 어떤 분이신가?’였다.

그 선생들로부터 소개받은 개혁주의 신학의 교과서라해도 과언이 아닌 로이드 존스나 아더핑크, 존 오웬, 바빙크, 
워필드, 아브라함 카이퍼, 게할더스 보스, 클라인 등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그들이 갖고 있는 신학적 지식의 
교집합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중세 종교 개혁 이전의 엉터리 율법주의로 회귀를 한듯한 
왜곡된 개혁주의 신학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신학자들 각자가 

서로 어긋난 소리를 하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할만 했다. 
그런데 신학자 자신의 일관성 없음이나 한 책 안에서의 삐걱대는 논리는 그야말로 억지다 싶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하고 서성이고 있을 때 난 원어 성경에 눈을 돌렸다. 
그런데 미국에는 원어 성경에 관심이 있는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많이 없었다. 
아니, 전문적인 언어학자들이나 문자 고고학자들은 아예 날 상대도 해주지 않았기에 주변에 있던 목회자들을 
돌아보았을 때의 내 판단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신학교 때부터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재미있게 공부했던 
나는 혼자서 사전을 가지고 씨름을 했었다.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부터 설교에 원어를 너무 많이 섞어서 쓰는 
설교자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부족했다. 신학교 몇 년 동안에 배운 일천한 원어 실력으로는 
성경의 진의 파악이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밀려서 한국에 입성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번에도 나에게 좋은 스승들을 붙여 주셨다. 
하나님은 라틴어와 아람어, 그리고 수메르어를 수십 년 간 연구를 해오셨다는 교수님들을 만나게 해 주셨다. 
어떤 분은 40년 가까이 아람어만을 연구해 오신 분도 계셨다. 그런데 그 분들 모두가 나를 참 귀하게 대해주셨다. 
그런 거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목회자가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원어 성서를 열심히 연구하는 선배 목사님과 후배 아이도 만나게 되었다. 
난 예의 그 오기가 발동해서 몇 개월 안에 그들의 울타리를 넘으리라 결심을 하고 밤잠을 설치며 
원어 연구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그 분들로부터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교수님들이 추천해 주신 프랑스와 영국의 문자 고고학자들의 책들을 하나하나 탐독해 들어가면서 
난 수메르 문명으로부터 흐르는 문자의 흐름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다고네의 글자와 도상, 넬슨 굿맨의 예술의 언어, 폴 리괴르의 상징이론에의 접근, 모리스 블랑쇼 끝없는 대담, 
벤베니스트 알파벳은 시나이 반도에서 탄생했다, 등등 많은 책을 샅샅이 읽었다.

그러고 나니 우가리트어로부터 시작하여 애굽의 상형문자, 그리고 가나안의 패니키아 문자와 원 시나이어, 
그리고 아람어와 고 히브리어, 그리고 거기서 흐르는 헬라어와 라틴어, 그리고 지금의 알파벳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난 이제 성경을 문자로 곡해케하는 마소라 문법에서도 조금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이 알파벳(알렙+베잍, 알파+베타, 하나님의 성전)이 원 시나이어(BC1,500년경 모세 때)에서 발출되고 
생성되었다는 것도 언어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그림문자에 가까운 원시나이어와 그것과 섞여서 하나님의 역사 속 택한 백성들에게 
사용되었던 아람어와 히브리 고어들의 연관성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열심을 다시 한 번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원 시나이어의 그 그림문자로 내 이름 석 자 뿐 아니라 
간단한 의사소통의 언어도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열심히 연구를 하고 당시의 고문서들을 열심히 읽어 보아도 그 문자들의 
원의 추적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파자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생경하여 그 작업에 푹 젖어있었다. 
그런데 고문서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문자의 내용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자음 알파벳 일곱 번째 글자인 ‘자인’은 ‘무기, 대립, 갈등’등의 의미를 담은 
문자로 히브리어 성경 해석자들은 이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고문서를 찾아 읽어 보니 

그 문자는 혁명, 파괴, 활성화, 
가운데, 재검토, 장식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나를 가르쳤던 아람어 선생은 무기, 대립, 갈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 문자를 억지로 끼워 맞추어 주고는 ‘이게 정답이다’라며 일보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성경에서 찾아 읽어본 그 문자는 그런 의미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었다.

 

만일 그러한 기초적 의미 몇 개에 묶여서 성경의 그 무궁무진한 

내용을 그 안에서만 정형화시켜 읽어내야 한다면 
우리가 게마트리아(Gematria)나, 노타리콘(Notarikon)의 

카발라들과 뭐가 다른 게 있겠는가? 그들은 중세 시대에 
나타난 유대 신비주의자들이다. 그들도 지금 원어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가슴에 품고 있는 히브리 자음 값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으로 토라를 해석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러한 히브리 자음 값만을 가지고 파자라는 형식을 통해 성경을 그 틀 안에서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는 이들이 ‘타로 점’을 만들어 낸 유대 신비주의자, 카발라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내게 문자를 가르쳐 주는 스승들에게 그 의미 값을 배우면서 

반드시 성경의 모세 오경이나 선지 서들이나 
시가서의 어절들을 갖다 대 준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문자로 이해를 하는 지를 자주 시험해 본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에게 문자에 대한 지식은 있는데 정리된 신학이 없다. 그래서 문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후배 아이는 하나님의 창세전 언약이나 예정이나 선택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는 김성수 목사와 자기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문자를 공부하고 율법주의를 배격한다고 해서 절대 목적지가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난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람어를 40년간 연구했다는 교수님은 불교와 기독교를 하나로 묶어서 이해를 하고 있었다. 
내 안에 이미 하나님이 있었는데 내가 그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란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건전한 신학적 바탕에 세워지지 않는 문자의 집이 신비주의나 기복주의 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 일갈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비주의에 대하여 “경험을 통하여 
신을 인식함(cognitio deo experimentalis)”이라고 간단히 정의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문자 고고학에 빠진 그들은 그들보다 더 유치하고 얕다. 
그러면서 자유, 자유 하는데 정말 밥맛없다. 무슨 놈의 자유가 그런 자유가 다 있나?

 

술에 취해 스승을 욕하면서도 ‘난 진리를 아니까 뭐든지 해도 돼’라고 하면 
용서가 되는 건가? 좋은 동지들을 만났는가 싶었는데 또 난 그들과 다른 길로 홀로 접어들었다. 
그러한 지적 허영심과 지적 호기심 충족을 ‘은혜 받음’과 혼동하고 있는 우리 서머나 식구들이 혹 있을까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진리 탐구에의 길은 참 길고도 험한 여정이다. 
그래도 난 다음 계단으로 올라가 더 열심히 파고 들어갈 것이다. 
진리의 맥 안에서는 모든 게 하나인 것을 확실하게 알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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