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칼럼 /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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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에 있는 모자 쓴 청년이 영민이입니다. 사진이 좀 이상하게 나왔네요^^ 왼쪽부터 영민(첫째-여호수아)이 하늘(둘째-다니엘)이 바다(셋째-폴) 입니다.




I miss him.

아버님, 그리워요.
Too much.

굉장히 많이 그리워요.
Almost to the point where it's unbearable.

이제는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왔네요.
I can't even look at a picture of him without bursting into tears.

아버님의 사진을 볼 때면 항상 울음을 참을 수 없어요.
It hurts too much to think about him or the memories we shared.

아버님을 생각하거나 아버님과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일이 너무 아프네요.
But on this day of all days I can't help but think of him.

하지만 단 하루도 아버님을 생각지 않는 날이 없어요.
He was so great.

아버님은 정말 위대하신 분이셨어요.
We had so many great times watching movies, going on vacations, eating nice food, lifting weights at the gym, and he even beat my ass as a kid to make sure I got things straight in my life. 아버님과 함께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던 너무나 소중한 기억들, 심지어 어렸을 때 똑바로 살라고 저를 엉덩이를 때리며 혼내신 기억마저도…
And I love him for that.

그래서 저는 아버님을 더 사랑해요.
My father struggled too much in his life.

아버님은 살면서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으셨어요.
From being spat on in the face, being betrayed by people who he thought were his friends, receiving death threats, and even being deliberately poisoned once.

아버님의 얼굴에 침을 맞고,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들에게 배신 당하고, 살해의 위협에 시달리고, 심지어 고의적으로 아버님을 독살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요.
But he had my family.

그러나 아버님에게는 우리 가족이 있었어요.
He would always tell me that we were the only thing that would keep him going in his harsh life.

아버님은 이런 힘든 삶을 겪어 낼 수 있는 이유가 우리 가족이 함께 했기 때문 이라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Thinking about how much he loved me hurts me more.

아버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하는 그 자체가 너무나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He would always tell me he was proud of me.

아버님은 항상 제가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지요.
"I'm proud of you my son".

장하다 , 내 아들아.”
I can still remember his voice and the way he said it to me all the time.

저는 여전히 아버님의 목소리, 그리고 아버님이 제게 말씀하시는 말투도 늘 기억해요.
Every time I got an A on a test, beat a personal record in the gym, lectured my younger brothers, ate a large-ass meal, and anything I did to help me progress into adulthood.

제가 시험에서 A를 받을 때, 체육관에서 누군가의 기록을 깼을 때, 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거나 , 밥을 배터지게 먹었을 때도…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Now that I'm 18 and officially a young adult it pains me to know that my father won't be here to tell me he's proud of me.

이제 저도 18세의 젊은이가 되었는데 이제 그런 저를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실 아빠가 이곳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I won't be able to see him at my college graduation, to tell him about my first job, to drink with him, to sing with him, to see him at my wedding, to have him see his grandkids...

아버님의 모습을 대학 졸업 날에도 뵐 수 없고, 제 첫 직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수 없고, 아버님과 함께 한 잔 하면서 노래할 수도 없고, 제 결혼식에도 함께 할 수 없고, 그리고 아버님의 손자 손녀를 보여드릴 수도 없겠지요.
It hurts too fucking much.

아버님이 안 계시다는 상황이 정말 지긋지긋한 고통이네요.
I believe that he is in a better place, but I know for a damn fact that he would want to be here with us to see and help my family progress.

아버님은 지금 더 좋은 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아버님께서는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길 원하고, 우리 가족이 성장하도록 돕기를 바래신다는 그 마음도 알아요.
Knowing he will be able to rest in peace does make me happy.

아버님이 주님의 평강 속에 잠드셨다는 사실이 정말로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You could call me selfish all you want to, but it tears me up inside to know I won't be able to see him until I die.

아버님이 저를 이기적이라고 말씀하실지라도, 제가 천국에 갈 때까지는 다시는 아버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뼛속까지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I want him here. 아버님이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셨으면 좋겠어요.
Even if he is in a better place.

비록 여기보다 더 좋은 천국에 계실지라도…
I've gained wisdom and experience after he left, but I would gladly trade all that back and more to have him here.

아버님이 떠나신 후 저는 지혜와 경험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을 이곳으로 다시 모시고 올 수만 있다면 저는 그런 모든 것들을 다 버릴 수 있습니다.
So many people failed to see how valuable he was and instead wished him gone.
He was one of the things I cherished most in this world.

아버님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가 돌아가시기를 저주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And now that I've lost him my heart is permanently scarred

아버님을 잃고 나니 제 가슴은 영원한 상처에 고통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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